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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비친 '울진의 인문학' 죽변면 도서관 지역인문학 을 다녀와서.... 1
작성일
2018-10-25 11:07:28
작성자
정미정
조회
85

냉이꽃

                                 울진민들레

 

대풍헌 앞마당에는

까닭 없이

냉이 꽃이 하얗게 피었다.

계절 없이 살다간

그리움이

봄은 아니지만

봄은 아니지만

이 땅위에 세워진

이유를 가만히

내게 남긴다.

줄기마다 하트를 만들어

멀리서 아득하게

그대들이 우리에게 남긴 꽃

내 몸을 숙여 지금

그대 에게 간다.

 

 

 

 

한줄의 시로 시작해 보는 이번 강의와 탐방 이야기(울진문화원원장 김성준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

 

1강 울진의 봉수대 이야기( (20181005. 금요일 저녁 730)

 

봉수대란 지금의 우정국과 전화국 역할을 했다.

외부로부터 침략이 있을 경우 신속히 본진과 중앙에 알리는 군사 통신 시설이다.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연기를 올려 지방과 지방을 연결해 중앙으로 신호를 했다.

봉수대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봉수대가 사라진지는 불과200년이 안되었다.

사라진 이유는 연료문제가 가장 큰 이유다.

연료로는 야생동물 똥 분뇨를 이용했는데 여우 똥이 연기가 퍼지지 않고 좋다고 한다.

여우 똥은 연기가 한곳으로 쭉 올라가고 옆으로 퍼지지 않아서 야생동물로는 적합했다.

그 외에는 소똥 말똥을 말려서 사용했는데, 야생동물들도 점차 사라지고 연료를 수입해서 사용했지만 그것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울진에는 봉수대가 7개 있다.

 

나곡봉수대(향출도산 봉수대): 나곡휴게소 건너편(향출도산 꼭대기)에 있다.

죽변 봉수대(죽변곶 봉수대):(죽변농협뒷편 해군부대 옆) 시민닭갈비 뒤쪽 골목길을 지나 오른쪽 끝에 있다.

죽진산봉수대:울진 대나리에 있다.

전반인산 봉수대:근남망양정 해수욕장 부근 산에 있다.

사동산 봉수대: 기성면 사동에 있는데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표산봉수대:기성공항 비행장 옆에 있다.

후포 후리산봉수대:후포 등기산 에 있다

울진의 전 세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물인 봉수대는 울진에 오래 살았지만 모르고 살았다.

누구한사람 이야기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5분 거리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생활해 왔다.

홍보하는 곳도 보지 못했으며 팻말이 붙어 있는 것도 보지 못했다.

역사나 문화에 관심은 많은 나로서는 안타가운 현실이다.

직접 강의를 듣고 그 유물을 알고 나서 그곳에 가서 보고 느낀 점은 보물 같은 유물이 그냥 버려져 있는 느낌이다.

누구하나 돌보지 않고 잡풀이 무성한 바닷가 귀퉁이에 길이 험해서 들어가기도 힘든 곳에 옛 선인들의 귀중한 발명품이 흔적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후세 인 우리들은 그것들을 등한시 하고 돌보지 않고 그냥 사라지게 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안타깝고 선인들의 지혜가 그냥 없어지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복구하려야 할 수 없는 유물이고 보물이다.

무엇보다 현재 울진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고 성장 시키는 것에 힘쓰는 것도 좋지만 옛 유물과 보물을 소중히 여겨 오래오래 보존하고 지키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고 유보하지 말아야 한다.

 

 

2강 울진의 산성 이야기 (20181012. 금요일 저녁 730)

 

임진왜란은 7년 정도 전쟁을 치렀지만 우리나라 곳곳을 침입해 그야말로 초토화 된 전쟁이다.

물론 울진도 벗어날 수 없었고 의병과 마을 주민들도 함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울진에는 산성이 2개 있는데 산성이란 왜구의 침임을 막아 울진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울진은 바닷가와 북쪽에서 내려오는 침입자들로부터 울진을 지켰다.

 

1.포진성(울진 근남 사이에 위치): 삼척에서 어느 날 태풍에 날려 작은 산이 하나 있다가 지금은 없어졌다.

2.고산성(울진읍 학마을 위치)

임진왜란 때 울진읍이 살아남기 위해 울진을 지켜준 고산성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성의 위엄을 지키듯 웅장함이 감돈다.

둥그렇게 쳐진 산성의 터는 깊이깊이 그 얼을 세워 묵념을 하기에 합당하다.

 

고산성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여러 개 있다.

울진사람들의 항복은 끝끝내 하지 않았고 왜구들은 갖은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1. 왜구가 쳐들어와 다들 숨어 있을 때 왜구들에게 지혜로운 노파는 구만리 천고 개를 가야 한다고 속인다.

그래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지구전에 이어진 식량부족과 일본 놈들의 잔머리와 풍족한 식량으로 하여 ( 불고기 파티와 젊은 아가씨 들을 춤을 추게 해) 정신을 홀려 울진을 지키는 북문공격 고산성이 함락되었다.

일본은 총칼로 우리를 위협해서 몽땅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지금도 구마이’‘나이많은 노파라는 뜻의 골패목천리를 가야 한다하여 천고개라는 지명이 그 동네 그대로 남아서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2. 무기조차 없던 우리 들은 화살이 다였고 그야말로 피바다가 되어 바위가 빨개지고 계곡이 빨갛게 물들어 지금도 그곳을 핏곡이라 부른다.

 

3. 오랫동안 숨어 있는 우리들을 일본군은 예쁜 아가씨 들을 춤을 추게 해 울진을 지키던 남자들을 유혹하고 총살시킨 일 그들의 만행을 오래오래 후세에 알려야 한다. 아직도 동네이름이 무월동이라 지금도 호월리 가면 그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아픈 역사가 있는 지명)

 

유비무환 (有備無患)을 못해서 아니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가?

그동안 왜구의 침임이 정묘호란,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수도 없이 많은 전쟁을 수대에 걸쳐 치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리 국민은 아직까지도 일본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우습게 여기되 안팎으로 탄탄히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국력을 굳굳히 쌓아야 한다.

 

강의와 탐방을 위해 애써주신 죽변면도서관 관계자 선생님들과 함께 한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