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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비친 '울진의 인문학' 죽변면 도서관 지역인문학 을 다녀와서.... 2
작성일
2018-10-25 11:29:58
작성자
정미정
조회
60

3강 조선시대 역 , ( (20181013. 토요일 저녁 730)

 

,원의 역할은 중요한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지금의 기차와 대중교통 역할이나 우편이나 메일 역할을 했다.

역은 국가가 주체가 되어 운영되었으며 원은 민간인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보수도 없이 일을 하였다.

 

울진에는 5개의 역과 7개의 원이 있었다.

 

1.흥부역(부구나곡)

2.수산역(근남 수산 다리 입구)

3.덕신역(덕신휴계소 부근)

4.달효역(월송 초등학교 앞)

5.조서역(서면 광비 부근)

 

중간 중간 원이 있었고 항시 말과 잠잘 수 있는 방과 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원은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않아 주민들이 일반인들에게 숙박업소나 음식을 팔아서 그 이익으로 원을 꾸려 나갔다.

역과 원역시 역사의 한 부분으로 지금 그것들을 잘 살려 관광단지로 조성하고 또한 역사보존차원에서 관리와 보존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큰 바람이자 미래의 자산이 반드시 될 것이다.

 

 

4강 울진의 항일운동( (20181019. 금요일 저녁 730)

 

울진은 항구로 둘러 있어서 죽변항 일대에는 일본왜구가 여러 번 쳐들어 왔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침입을 많이 받아서 물론 울진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울진에도 의병 활동이 있었고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이 투철한 지역이었다.

 

울진에 만흥학교가 있어서 겉으로는 신학문을 가르치고 속으로는 민족의식을 심어준 학교이다.

위치는 매화의 제동중학교학생들은62명 정도였고 그때 졸업하고 폐교되었다.

1911년에 폐교되었지만, 만흥학교는 3~4년 정도 지속적으로 운동을 했다.

 

기미년 411일 매화 장에서 1일을 시작으로 부구 흥부만세 운동은 23일 밤잠을 죽이며 농성하고 의병활동을 한 결과 지금의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기독교인 주축으로 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울진에서는 의병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그리하여 울진 장에서 하려던 의병활동은 끝내 하지 못했다.

악랄하고 지독한 일본사람들의 감시가 우리와는 사뭇 달라 보이는 정신이다.

활동하는 사람들을 잡아가 고문과 고초를 주니 견디지 못해 울진 장날운동한다는 것은 불었기 때문에 발각 되었다.

어느 누구도 견디지 못했을 정도로 고문을 늦추지 않음이 분명하다.

우리의 과거가 이토록 처절 했건만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현재 나는 어떤 민족정신을 마음에 담아두고 새겨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서대문 형무소도 가족들과 오래전에 다녀왔지만 아직까지 그곳에서 죽은 유관순 열사의 좁디좁은 칸막이의 교도소를 잊지 않고 있다.

 

 

탐방 (20181020일 토요일 오전 9~오후5)

 

죽변 봉수대를 둘러보며 다시 한 번 문화유산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을 만큼 민족정신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벌레들이 들 끊고 잡풀들이 무성한 그곳은 오열해야만 할 만큼 그 흔적이 조금씩 사라짐을 보았다.

 

고산성으로 이동하여 산성과 산성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숙연해 짐은 나뿐이 아니었다.

고산성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줄로 그곳을 단정 짓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후에는 역시 걷기 좋은 행곡 주천 대를 가서 주천대의 경치를 보며 주천 대에 얽힌 이야기를 풀었다.

주천 대는 천냥 암 이라는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하늘에서 바위의 작은 구멍으로 쌀이 내려와 쌀구 자 를 써서 살구가 한자로 풀어서 일본군들이 살구행자를 써서 행곡 이라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

 

행곡이 쌀구, 살구, 행곡 이렇게 변형 되었다.

그곳은 경치가 좋기로 유명해 김시습, 임유후 오도일 같은 문인들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하여 원래이름은 수천 대 이었는데 술주자를 넣어 주천대로 하자 하여 주천 대라고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다음 코스로는~ 대풍헌

대풍헌은 그래도 울진에서 좀 알려진 곳이라 잘 정리되어 있었고 넓은 마당과 문화유적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이제는 꽤 많이 있어 단정하고 아담하게 보존하고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대풍헌이 울릉도 독도를 연결해 주는 사슬이 되었고 지금 울진에서 울릉도 독도를 향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어 무엇보다 고맙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매화 만세 공원으로 가서 체험 활동을 했다.

 

기념으로 만든 매화 만세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외치고흰 한복을 차려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삼창을 불렀다.

3.1운동 하면 책에서 배운바 되로 유관순 열사가 생각난다.

유관순 열사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어린나이에 학교와 교회 지방을 다니며 운동했고 결국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옥고를 치르며 견디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돌아가셨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울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치하의 만세운동을 했고 장날과 교회를 돌며 지역운동의 영혼을 불태웠다.

그 이름들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며 많은 홍보로 후세를 위해 알려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유관순 열사도 존경스럽지만 울진에 살면서 울진 열사 이름도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김구 선생 밑에 들어간 주진수, 한만영, 근남행곡 분이신 장식 전병권 전도사, 등 애국 열사들의 이름과 독도를 지키다 일본에 붙들려간 안용복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외 에도 많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싶다.

 

강의와 탐방을 위해 애써주신 죽변면도서관 관계자 선생님들과 함께 한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